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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현 아르스비테 발행인 | 중앙 Sunday 제449호

삶의 방식 두번째 질문, 지금 진정 나만의 삶을 살고 있나

나에게 1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앞날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청와대에 호기롭게 사표를 제출하고 얻어진 시간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찾겠다는 대의명분은 그럴듯했지만, 현실은 막막했다. 대학 졸업 이후 매일 출근과 회식의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 왔던 일상에 텅 빈 자유가 생기니 막상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자신만의 삶을 찾는다는 것은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음만 먹는다고 하루 아침에 깔끔하게 정리돼 내 앞에 펼쳐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살아온 삶의 관성이 있다. 삶의 씨줄과 날줄은 나의 과거와 주변과의 관계, 욕심과 감정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실타래 같이 뒤엉킨 내면세계에서 어떤 것이 내가 원하는 길인지 찾으려면 어느 정도 거리감을 갖고 자기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기관찰은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물리적인 시간뿐 아니라 나이라는 경험과 지혜가 축적된 질적 시간이. 이 불안하고 불편한 과정을 견디지 못하면 다시 주어진 일상의 물결에 밀려다니는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약간의 안도감마저 느끼면서. 그렇다면 자신만의 삶이라는 건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 지금 이것이 나의 삶인지, 남이 나에게 원하는 삶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사람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이 자신의 삶이다. 삶에 거짓이라는 건 없다.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과 특수한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자신과 남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순간에도. 누구나 자신이 선 위치에서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만 살 수 있기에.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인간은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오랜 세월을 거쳐 그 사람의 유전자에 새겨지고, 자신만의 시간을 살면서 마음에 새겨진 그 사람만의 무늬가 있다. 그 마음의 섬세한 결이 느껴지고 내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면, 그 소리와 내 외면의 삶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결심이 서는 순간이 있다. 몇 년 전 『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읽었다. 불의의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할아버지가 자폐증을 앓는 손자에게 자신이 느낀 삶의 교훈을 편지 형식으로 전하는 내용이다. 책에는 육체적 고통이 극심했던 어느 날 그가 꾼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꿈에 나온 신은 그에게 우주의 한 귀퉁이를 줄테니 더 크게, 좋게 만들지도 말고 보살피기만 하라고 말한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단 3㎜의 우주. 심리상담사이고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나에게 겨우 3㎜라니! 처음엔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 조금씩 자신에게 그 3㎜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손자인 샘도 자신만의 3㎜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바란다는 말을 남긴다. 자신의 삶을 찾는다는 것은 서점에 쌓여 있는 많은 사람들의 성공기에 나오는 것과 같은 화려한 업적과 상관없다. 그것은 훨씬 더 내적이고 사적인 과정이다. 나만의 3㎜를 찾는 것처럼. 그 작은 우주에 발을 딛고, 나의 삶이라고 온전하게 받아들여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다. 그 순간 그 작은 3㎜가 어떠한 삶의 형태를 띄고 있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기적 같은 일들은 그 때부터 일어난다.

나만의 길을 어렴풋이 느끼게 됐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현실에 맞는 하나의 구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누구나 현실 속에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있다. 내면의 나와 외면의 나를 조율하고 일치시키는 과정은 또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나의 경우, 그 한 해를 넘기고도 8년이란 시간이 더 걸렸다. 다만 구심점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어느 퍼즐 조각이 어디 들어가야 하는지도 모를 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자기만의 3㎜를 찾기까지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적어도 한 번은 절대로 이것만은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관성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진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심정으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표현이 있다. 정말 그럴까. 다음 글에서 던지고자 하는 삶의 방식 세번째 질문이다. [출처: 중앙일보] [삶의 방식 - 두번째 질문] 지금 진정 나만의 삶을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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