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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현 아르스비테 발행인 | 중앙 Sunday 제457호

삶의 방식 네 번째 질문, 나를 던질 믿음, 내게는 있을까

로맨틱 코메디 영화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평범하고 눈에 띄지도 않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그는 새삼 눈을 떴다고 말한다.

‘눈을 뜬다’는 깨달음과 관련해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치를 깨우치는 순간,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이제 막 눈을 뜬 사람처럼 모든게 새롭게 보인다. 잠에서 깬다는 비유로도 묘사된다.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도, 일이 안 풀리면 평소의 자신과는 완전 반대로 행동해보는 것도 일종의 눈을 뜨는 과정이다. 자신의 작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그동안은 보이지 않았던 가능성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하나밖에 몰랐다면 그 과정에서 선택의 여지는 둘로 넓혀진다. 고정관념이 무너질수록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는 얘기다. 내가 한 가지 길에 집착했을 뿐이지 사실상 삶이 제공하는 길들은 항상 무궁무진했음을 느끼게 된다.

딱히 대단한 얘기도 아니다.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돈과 권력이 최고의 가치인 사람도 있지만, 훌훌 털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도 있다. 어떤 길도 좋고 나쁜 것은 없다. 자기가 고집해온 하나의 길은 살면서 형성된 자신만의 틀일 뿐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일 신이 있다면, 신은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아티스트일 거라고.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존재, 또는 동양적 표현으로 분별심이 없는 존재로서의 신은 팔레트에 있는 모든 색상의 물감을 자유자재로 사용해서 세상을 창조하지 않을까. 흰색은 선한 색이고, 검은 색은 악한 색이라는 식으로 세상의 좋고 나쁨을 가르려는 분별은 사고의 제약 속에 사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고정관념들일 것이다. 고정관념이 없어지면 팔레트의 모든 물감은 그저 아름다운, 각자 다른 느낌을 표현하는 색상일 뿐이다. 팔레트의 모든 색상들을 필요할 때 적절한 곳에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될 때 진정한 창조가 가능해진다. 비로소 내가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고정관념, 틀을 깨고 나오는 첫 순간은 공포스럽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나면 내게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절벽에서 뛰어내린다고 생각할 때마다 사실은 더 넓은 땅을 밟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 안에는 삶을 다양하게 운용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이 항상 있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뛰어내리는 사람에게는 날개가 있다는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믿게 된다.

믿음은 특별한 마음의 상태이다. 경우의 수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더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거라는 보장이 있어야만 변화를 시도하는 마음은 분석이지 믿음은 아니다. 믿음은 절벽 아래 무엇이 있는지 모르면서도 나에게는 날개가 있음을 의심치 않고 뛰어내릴 수 있는 마음이다. 이처럼 믿는 마음이란 그것이 나 자신을 믿는 경우든, 남을 믿는 경우든 또는 신이나 우주의 이치를 믿는 경우든 모두 결이 같은 에너지다. 그래서 자신의 고정관념을 한번 놓아보고, 새로운 시도에 자신을 던져볼 수 있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자기 자신을 믿지 못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저 사회적 통념과 주변의 기대를 핑계로 내세우고 있을 뿐.

나에게 믿음이란 참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지금까지 몇 편의 글에 써 온 모든 것이 그랬던 것처럼 믿음을 체화시키는 과정 역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고, 수많은 책과 선생님들을 통해 가르침을 얻았다. 세상의 모든 중요한 가치들은 그것을 깨우치고 뜸을 들여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린다. 젊었을 때는 어렵고 답답하게만 느껴지더니 이제는 그 과정이 즐겁다. 그래서 청소년 자살율이 높다는 뉴스를 접하면 안타깝다. 아직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지기 전에 주변에서 또는 스스로 너무나 많은 기대와 고정관념과 짐을 떠안겨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경험할 만큼의 삶의 시간을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 모퉁이만 돌면 또 다른 세상이 있는데. 그리고 그 뒤에도 크고 작은 많은 모퉁이들을 만나는 것이 삶인데.

자신을 믿고 문 밖으로 발을 내딛어 눈을 뜨는 순간 삶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어떤 원리일까. 다음 글에서 던지고자 하는 ‘삶의 방식 다섯 번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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