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이지현 <아르스비테> 발행인 | 중앙 Sunday 제518호 제514호

삶의 방식 열여덟 번째 질문, 어딜 가면 신성을 찾을 수 있을까

지난 가을 유럽 한복판에서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마음공부를 해온 스위스인인 지인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좋은 목적에 사용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쓸 수 있도록 개방했다. 초원 넘어 호수가 보이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 뒤로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태국불교를 따르는 독일인 승려가 강의와 피정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 공간을 활용했다. 지인은 힌두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며 한 행사에 나를 초청했다.

그 날 모임에는 가까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부터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옴 챈팅(Om Chanting)’을 하기 위해서인데, 옴은 영적인 파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소리로, 힌두교·불교· 자이나교 등에서 자주 사용하는 만트라다. 바깥의 큰 원과 안의 작은 원의 형태로 서로 마주보고 앉은 참가자들은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계속 ‘옴’을 외웠다. 남자와 여자의 높낮이가 다른 목소리들이 처음에는 들쑥날쑥 불협화음으로 들리더니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저음에서부터 고음까지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끝날 무렵, 옴은 진폭이 크고 웅장한 하나의 소리가 되어 공간을 꽉 채우며 진동했다. 그 힘이 매우 커 처음 경험한 나로서는 약간 놀랄 정도였다.

그런데 소리의 힘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눈이 파랗고 피부가 하얀 서양인들이 마루바닥에 가부좌를 한 채 열중하는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 다음 장면은 더욱 놀라웠다. 참석자들은 키 큰 독일 청년이 치는 기타 반주에 맞춰 힌두교 노래들을 열정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힌디어로. 나는 이 모든 광경이 신기했다. 실질적이고 이성적인, 그리고 기독교 문화에서 자란 게르만족들이 맞나 싶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소득이 높은 유럽의 선진국에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마음을 채울 것을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더욱 내면의 충족을 갈구하는지도 모른다. 유럽에는 힌두교가 일찍이 소개되어 유명한(?) 영적지도자들이 마치 순회공연을 하듯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돌며, 많은 유럽인들이 이들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선다는 사실은 익히 들은 바 있었다.

서양사람들이 동양의 신을 찬양하는 모습이 내 눈에만 새롭게 비쳤을 뿐, 사실 전혀 특별한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신도들을 확보하고 있는 기독교도 다른 나라에서 탄생했고, 불교는 중국을 거쳐 먼 인도로부터 건너왔다. 중동에서 시작된 이슬람교도 전세계 여러 나라에 확산됐다. 동양은 서양으로부터, 서양은 동양으로부터 끊임 없이 서로 영적 영감을 주고 받아왔다. 천재적인 제품들로 세상을 바꾼 스티브 잡스도 선불교에서 많은 영감과 위안을 얻었다고 하지 않나. 나 개인적으로는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구도의 길을 찾아야 하며 그래서다양한 믿음에 열려있을수록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초월하는 그 무엇인가와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절실한 노력들을 접할 때마다 인간들이 갖고 있는 내면의 공허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바가 많다. 그리고 스위스 지인이 전해준힌두교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먼 옛날 인간도 모두 신이었던 시절, 인간들이 신성을 함부로 남용하는 것을 보다 못 한 창조의 신 브라마는 신성을 빼앗아 숨기기로 하고 신들의 회의를 소집했다. 신성을 인간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야 할 텐데 어디라면 가장 찾기가 어려울까. 땅 속 깊이 꼭꼭 묻어둘까. 아니. 그럼 바다 깊은 곳에 던져버릴까. 아니, 그것도 너무 쉬워. 산 높은 곳은 어떨까. 아, 그게 좋겠다.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숨겨두자. 거기라면 아무도 찾을 생각을 안 할 테니까

Latest Articl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