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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현 <아르스비테> 발행인 | 중앙 Sunday 제502호

삶의 방식 열다섯 번째 질문, 만일 외부에서 구루를 찾고 있다면

불교에 조사(스승)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이 있다. 외부의 우상에서 진리를 찾지 말라는 가르침인데, 이를 유머러스하고 기발하게 보여주려한 사례가 있다.

비크람 간디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도계 미국인이다. 힌두교를 믿는 가정에서 자라고 명문대학에서 종교학을 공부하기도 하지만, 그에게 믿음을 심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인도의 요가가 미국에서 큰 붐을 일으키고 많은 서양인들이 자기 부모 나라의 영적 전통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현상을 보며 의아해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 그는 소위 영적 구루로 불리는 많은 사람들을 취재하지만 대부분 가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할머니가 아침마다 정성을 들이던 힌두교 의식과 그 때 느꼈던 깊은 평화로움을 기억한다.

구루는 바로 내 안에 있지 외부에 있지 않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비크람 간디는 대담한 실험을 시작한다. 그는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른다. 그리고 요가수업을 받은 뒤 티셔츠와 청바지를 벗고 인도의 구루 같은 전통복장을 걸친다. 완벽한 미국식 영어발음을 감추고 인도에서 갓 온 사람 같이 말한다. 영적 능력을 가진 ‘쿠마레’라는 가상의 구루에 대한 몇 편의 동영상으로 가짜 신분을 만든 후, 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아리조나주 피닉스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구루 행세를 시작한다. 하나 둘씩 그를 만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이고, 쿠마레는 그들에게 새로운 요가동작과 명상법을 가르친다. 물론 모두 간디가 직접 만들어낸 것들이다. 심지어는 과거 많은 현자들이 그랬던 것 처럼 이 모든 것은 허상이며 자신도 허상일 뿐이라는 ‘진실’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갈수록 늘어난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구루와 힐링문화의 현실을 조금은 장난스럽게, 조금은 아프게 꼬집기 위해 시작한 이 실험은 뜻밖의 반전으로 이어진다. 그를 믿는 제자들은 그에게 자신들의 아픔과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털어놓는다. 때로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그들의 고백을 듣는 쿠마레의 눈빛은 갈수록 진지해진다.

쿠마레의 가르침은 하나다. 내면의 구루를 찾으라고 주문한다. 그 구루를 만난다면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그 조언대로 살아보라고 한다. 제자들은 쿠마레로부터 찾으려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상적 모습을 향해 서서히 변화를 일으킨다.

‘쿠마레’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이 실험은 비크람 간디가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으로 끝난다. 제자들 앞에 선 그는 “나의 이름은 비크람 간디입니다. 쿠마레는 바로 내 안에 있는 구루입니다”라고 말한다. 쿠마레는 간디 자신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현실 속에서 구현한 것이다.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주문했던 것처럼.

이 실험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마음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 잔인한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허상에 기대고 있는지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외부에서 찾지 않더라도 자기 안에 있는, 자기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마치 그런 것처럼(as if)’ 살면, 그렇게 되듯이. 힌두교에는 ‘아바타’라는 개념이 있다. 신적 존재가 다른 몸을 빌려 이 세계에 나타나는 것이다. 인터넷의 아바타도, 영화 ‘아바타’의 콘셉트도 여기서 온 것이다. 부처도,조사도 우리 내면에 있다. 내면의 구루를 찾는 순간 우리의 삶은 신성이 내재하는 아바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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