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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현 <아르스비테> 발행인 | 중앙 Sunday 제498호

삶의 방식 열네 번째 질문, 운명은 어떻게 개척되는가

미즈노 남보쿠는 한때 3000명이 넘는 제자가 따랐다는 일본 에도시대의 전설적인 관상 대가다. 젊은 시절 술과 도박, 싸움을 일삼던 그는 어느 관상가로부터 “1년 안에 칼에 맞아 죽을 운명이니 속히 절을 찾아가 출가하라”는 말을 듣는다. 깜짝 놀라 절을 찾아가지만 절의 주지는 수행은 인내가 필요한 길이니 1년 동안 콩과 보리만 먹는 생활을 하고 오면 받아주겠다며 돌려보낸다. 그 후 고된 일을 하면서도 철저하게 콩과 보리 식사만 한 미즈노는 1년을 무사히 보낸 뒤 그의 죽음을 예언했던 관상가를 다시 찾아간다. 관상가는 그의 상이 완전히 바뀐 것을 보고 크게 놀라며 식사를 절제한 것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미즈노는 출가하는 대신 사람의 얼굴·골격·자세·생활습관 등을 연구하게 되고, 관상과 운명을 개척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미즈노는 운명을 바꿔 성공하려면 소식과 절제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책으로 우리 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지만, 소위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도 이를 빌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어떤 삶의 원리이자 이치일 것이다. 매일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삶은 우리가 하루 하루를 어떠한 에너지로 채우고 있는가(input)에 대한 결과물(output)이다.

소식을 하고 절제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단순하고 겸손한 기운이 지배하는 생활이다. 말이야 쉽지만 소식도, 절제하는 생활습관도, 충동에 이끌리지 않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이처럼 지금까지의 생활과는 다른 마음을 입력하는 것이다.

원인이 있으면 이에 따른 결과가 있다는 것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자명한 이치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고(We are what we eat),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곧 우리를 형성한다(We are what we think)고 한다. 굳이 관상이 정확하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얼굴에, 또 몸에 쓰여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내 삶은 어제까지 내가 살아온 날들의 결과물이기에.

그래서 미즈노 남보쿠는 말한다. “만물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고 하찮게 대하면 자신 또한 만물로부터 똑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복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지만 스스로 쌓은 덕이 복이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 자신의 운명은 매일 자신이 행동하는 바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대하는 물·불·종이나 도구를 다루는 모습만 보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운명의 길흉이나 무엇이 성공인지는 세속적인 잣대로 만들어낸, 삶 전체를 봤을 때는 의미 없는 기준들이다. 미즈노가 말하는 것은 만물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정성이 담긴 마음이다. 삶은 살아 있어 항상 움직인다. 매 순간 속에는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담겨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그 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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