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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현 <아르스비테> 발행인 | 중앙 Sunday 제474호

삶의 방식 여덟 번째 질문, 삶의 리듬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최근 바둑판 위에서 벌어진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문 가들에 따르면 스스로 정보를 모으고 학습 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을 할 수 있 는 인공지능은 언젠가는 인간의 뇌로는 파 악할 수 없는 우주의 원리도 알 수 있게 될지 모른다고 한다.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참 이 상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부정확하고, 감정에 휘둘리고, 쓸데없이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인간 삶의 애환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학자들이 자아를 연구하고, 콤플렉스를 분석하고, 행복 이론들을 제시해왔는데, 기계는 이 모든 과정이 필요 없다. 인간은 그야말로 비효율의 극치가 아닌가.

그러나 지금 사람이 하고 있는 많은 영역이 차차 기계의 몫으로 넘어갈수록 우리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더욱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어렸을 때 내 운명은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개척해 갈 수 있는 것인지 나름 깊은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다. 그 답을 얻기 위해 한 때 운명을 공부한다는 사람을 꽤 많이 찾아 다녔는데, 그 때 주워들은 몇 가지가 인상적 이었다. 주로 생년월일을 놓고 풀이하는 동서양의 방법들은 사람은 태어날 때 자연의 영향을 받으며, 그 에너지가 그의 성향을 결정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그의 성향이 만들어내는 하나 의 리듬이라는 것이다.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생명은 우주와 연결되어 있으며, 개개인의 삶은 자연의 큰 흐름과 공명하는 작은 리듬들이라는 것이 내게는 흥미롭고 시적으로 느껴졌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한 사람의 삶은 그가 타고난 성향과 리듬이 그가 처한 구체적인 현실에 부딪치면서 만들어진다. 마음의 상처도, 콤플렉스도, 그만의 삶의 습성도 이 과정에서 생겨난다. 자연의 영향일 수도 있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일 수도 있겠지 만, 어떠한 성향을 갖고있다는 것은 푸른색 색안경을 쓴 사람이 세상을 파랗게 보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것을 그 틀 안에서 파악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자신의 삶을 창조해가 는 길은 색안경을 벗고, 자신이 안경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작업이다.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가장 강력한 색안경 중 하나는 두려움 이다.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은 이성적인 현 실 인식을 불가능하게 하고, 원하는 삶을 찾 아갈 수 없도록 정신을 마비시킨다. 나 역시 때로 근거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 때 우연히 알게 된 외국인 심리상담가가 한 말을 떠올린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그 는 환자들의 뇌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부분 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으면, 환자들 은 트라우마의 후유증 없이 전혀 새로운 행 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다소 비전형적인 방법을 통해 이러한 치료를 유도하지만, 나는 단순히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를 상 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자유롭게 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 마음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반복적인 학습이 필요하지만.

오래 전 내게 명상을 지도해준 한 스님은 성실한 수행을 통해 인간의 모든 행위에서 감정이 소멸되면 경험만이 남는다고 했다. 감정이 제거된 경험의 총체는 곧 지혜라는 것이다. 순수한 앎 그 자체만이 남을 때 우리 는 생명의 숨결과 우주의 리듬을 더 생생하 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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