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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 Sunday 제453호

삶의 방식 세 번째 질문,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을까

삶이 생각했던 대로 전개되지 않아 답답해 할 때마다 어머니가 늘 해주던 조언이 있다. 원래 계획과 완전히 반대로 해보라고. 20,30대 때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한데 원하지도 않는 대로 살아보라니. 그 말이 내게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누구나 삶이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계 획대로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 계획은 자기가 지향하는 이상형일 수도 있고, 어려서부 터 주변의 기대로 만들어지거나 사회가 요 구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같이 남의 눈을 의식하고, 튀어나온 못이 정을 맞는 다는 속담이 사회생활의 기준이 되다시피 한 사회에선 그 그림이 보여지기 위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큰 탈 없이 그 그림에 충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갈수록 모험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이야기다. 운좋게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들에 몸을 담다 보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나만의 길을 찾아야겠 다는 내면의 소리가 들려도 당장 지금 가진 것들을 놓기가 쉽지 않았다. 과감하게 직장에 사표를 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기 위해 가진 1년의 시간 중에도 마음 속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의 궤도대로 가면 어떤 커리어가 펼쳐질지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데, 나만의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큰 모험으로 느껴졌다. 1년의 은둔생활이 끝나자 다시 그럴듯한 명함을 지닌 커리어는 계속 쌓여 갔고, 그럴수록 그 어떤 작은 것이라도 내려놓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삶을 놓아야 한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벼랑 끝에 서 뛰어내리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다. 현재 의 삶-또는 명성, 돈, 권력-이 곧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려놓기 위해서는 내 안의 고정관념들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죽음과의 조우는 가장 강력한 깨달음을 제공하는 계기 중 하나다. 죽음을 가까이서 마주 본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대학에서 한 유명한 졸업연설에 그러한 순간이 생생하고도 감동적으로 묘사돼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인식하는 순간 삶에 대한 시각은 완전히 바뀐다. 자존심,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등이 얼마나 부질없는 지를 알게 되고 무엇이 중요한 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기억하면 나는 잃을 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차피 우리 모두 빈 손이기 때문에. 실제로 죽음과 씨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매일 일상 속에서 내가 움켜쥐고 있는 껍데기들을 내려놓고 죽음을 겪어야 역설적으로 진정한 나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치 허물을 벗듯이 또는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듯이.

상황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으면 완전히 거꾸로 시도해보라고 한 어머니의 조언도 같은 맥락이다. 반대로 해 본다는 것은 내 머리 속의 나, 나의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의 삶은 이렇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들. 모두 내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과정일 뿐인데도 나를 버리는 작업은 실제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 같은 엄청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내 아이덴티티의 핵심이라고 여겨온 부분이자 내 성장과정, 나 자신에 대한 기대 등 감정이 복작하게 얽혀 있을수록 그 공포 심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뛰어내리고 나 면 내게 무엇이 남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존심과 집착이 강한 나의 경우 첫 번째 껍 질을 깨고 나오는 데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러나 뛰어내려 본 사람만이 안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들이 소멸되면 새로운 삶의 창조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이번 글의 질문인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용감하게 뛰어 내리는 사람에게는 날개가 있다. 날개가 있 다는 것을 믿는 과정은 어떤 것일까. 다음 글에서 던지고자 하는 ‘삶의 방식 네 번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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