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HIP
Volume 05
TREES
지난해 <아르스비테>는 ‛영감’이라는 제목의 창간호와 함께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원래 첫 호에 다루고자 준비했던 주제는 ‛지혜’였습니다. <아르스비테>가 좋은 삶을 화두로 삼은 만큼 지혜는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열쇠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혜란 과연 뭘까요.
책을 통한 공부가 아닌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는 데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동시대의 비교 대상을 횡적으로 많이 보는 겁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거죠. 상대적인 관점이 생기면서 시야가 넓어집니다.
두 번째는 시간에서 오는 지혜입니다.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흐름과 패턴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간 속의 인과관계가 보이면서 내 코앞에 닥쳤을 때는 안 보였던 상황을 이해하는 눈이 깊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조부모, 부모, 자식, 그리고 손주의 세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나의 삶을 포함해 다섯 세대의 시간을 겪는다는 것은 큰 공부입니다. 그 경험이 주는 지혜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투명한 눈으로 잘 들여다본다면 말이죠.
100년도 채 안 되는 단 한 번의 생을 살 뿐인 인간도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 작은 지혜가 생기는데,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살 수 있다면 어떨까요. 나무들처럼. 같은 자리에서 수많은 생을 살아내고 하루하루 다른 환경의 변화를 견뎌내는 나무들에 축적된 지혜는 과연 어떤 내용일까요. 그 나이테의 원 하나하나에 우주와 삶에 대한 깨달음이 차곡차곡 새겨져있지 않을까요.
<아르스비테> 5호에서 나무의 지혜를 다루기로 한 데에는 이처럼 <아르스비테>의 주제인 ‘어떻게 살아야 좋은가’라는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지혜로워지는 것 같으면서도 사람은 살면서 아집이 빚어내는 마음의 부딪힘을 반복적으로 경험합니다. 이 부딪힘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성장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죠. 어느 지인은 아집의 뿌리는 깊고 깊어 뽑았다고 마음 놓고 있을 때 불쑥 다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수신(修身)은 종신(終身)이 되어서야 끝난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며. 사람으로 태어나 주어진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많은 지혜가 필요한 듯합니다.
그렇다면 나무처럼 인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살아온 존재는 과연 삶에 대해 어떤 지혜를 터득했을까요. 나무의 삶이 인간의 삶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까요. 우리가 필자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돌아온 답은 생생하고 다채롭습니다. 생존을 위한 나무의 치열함은 예상한 대로입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상반된 다양한 속성들을 소화해내는 그 적응력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고독하게 홀로 세월을 버텨내는가 하면 주변의 미생물, 동물들과 생존을 위해 협력하고, 조금이라도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 주변과 경쟁하는가 하면, 자신을 해치는 곤충이나 동물이 다가오면 신호를 보내 멀리 있는 다른 나무들에게도 알려줍니다. 움직이지만 않을 뿐 나무는 매 순간을 역동적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은 나무가 서로 교감하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들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한 해 한 해 자신을 비우는 나무의 삶의 방식입니다. 나무는 올해 새로 태어난 잎과 가지들만 살아 있을 뿐, 지난해까지 키운 몸집은 모두 죽음으로 비운다고 합니다. 자신을 비우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오랜 세월을 살 수 있는 것이죠.
나무의 지혜를 다룬 <아르스비테> 5호는 두 개의 파트로 나누었습니다. 1부는 이 같은 나무의 다양한 속성과 지혜에 대한 글들입니다. 2부는 그러한 나무를 바라보는 인간, 그리고 나무가 주는 영감을 담았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들과 현인들이 나무가 울창한 숲을 걷고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였고, 많은 종교들은 나무에 비유해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나무의 어떤 면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인간과 나무의 교감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예로부터 많은 토속신앙과 공동체들은 나무를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무는 우주와 교감하고 우주의 에너지를 기록하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뿌리는 땅에 내리고, 가지는 하늘을 향해 뻗어 하늘과 땅 사이에 벌어지는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죠.
<아르스비테> 5호는 나무들이 가장 푸르고 울창하게 뻗어나가는 여름을 맞아 지구와 인간의 역사의 목격자인 나무, 그리고 때로는 성스럽게, 때로는 치열하게 숲속의 현자 같은 삶을 이어온 나무의 지혜에 대한 기록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