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 스무 번째 질문 서로의 거울이 되어준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힐링’이란 단어가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된지 꽤 됐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다. 내가 아는 외국 지인들은 힐링을 얻기 위해 먼 나라까지 고된 여행을 감수한다. 히말라야산에, 사원에, 수도원에, 미래를 본다는 신통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에. 이들은 자신의 마음공부와 영적 여정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속마음은 누군가 나서서 이건 이런 거고 저건 저런 거야, 네 문제는 바로 이거야라고 속시원하게 말해주기를 바랄 때가 많다. 어딘가 의존하고 싶은데다 잘 안되면 남탓하기도 딱 좋다. 그런데 이는 입 안에서 녹는 사탕 같은 순간의 위안일 뿐이다. 그때는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 같아도 다시 자신의 삶이 있는 현실로 돌아오면 또 같은 문제들에 부딪히며 괴로워한다. 잠시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놓았을 뿐 근본적인 깨달음과 마음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창고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안고사는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은 서로에게 상처는 주면서 위안을 주는데는 정말 서툰 존재인가 보다.

 

각박한 세상에 살다보니 누구나 부드럽고 따뜻한 위로를 원한다. 심지어 나는 마음공부를 꽤 오래했다는 사람들을 만났을때 그 사람에게서 내가 바라는 온화함이 느껴지지 않으면 실망과 의심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판단한단 말인가.

 

15년쯤 전, 서울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정신분석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해 내릴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처음으로 사람들은 실제적 현실과 상관 없이 자기가 만들어놓은 심리적 현실속에 살고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고난 성향에 주변 환경에서 겪은 경험들이 더해져 만들어진 자신만의 심리적 패턴을 말하는 것이다. 이 안에 분노도, 강박관념도, 열등감도 있다. 마음의 부딪힘이 어디서 일어나는지를 파악하려면 자기가 사로잡혀있는 패턴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동양적 수행에서 마음이 어디서 일어나고 어디로 사라지는지 면밀히 관찰할 것을 강조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떠한 패턴으로 세상을 대해왔는지, 그리고 왜 이런 회로들이 생겼는지를 스스로 깨우쳐야 막혀있던 부분이 풀린다.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면을 알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무엇이 숨어있는지 대면하기가 두려워 저항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 과정에서는 이 저항이 속내를 드러내기 싫어 도망가기, 교묘하게 합리화하기, 분석가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무시당한다고 생각해서 반발하기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는 수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고비들을 넘겨야 한다.

 

예전에 기(氣)수련을 할 때 느낀 게 있다. 열등감·분노 등의 감정을 해소하지 못해 쌓이면 기운이 막힌다. 이러한 감정은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실체 없는 투정이 아니다. 실제로 기운이 막히는 것이다. 이렇게 뭉쳐 덩어리진 곳이 있으면, 기운이 몸 안에서 돌다 여기에 계속 부딪히며 더 이상 못 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럴때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뚫릴 때까지 며칠이고 그저 우직하게 버텨야 한다. 힘들어서 포기하면 결국 그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 한다. 

 

좋은 전문가는, 또는 스승은, 이 쉽지 않은 과정에서 나를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거울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다. 어떤 수행이든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지만, 누군가 왜곡되지 않은 거울을 들어주면 마음의 패턴을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어쩌면 상처를 안고사는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어설픈 조언이 아니라 이렇게 고요한 마음으로 거울을 들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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