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 열일곱 번째 질문, 나를 괴롭히는 마음의 걸림이 있다면...

내게 건강염려증이 생겼다. 3년 전 겨울, 심한 고열에 시달린 적이 있다. 감기몸살인 줄알았던 나는 일 때문에 바빠 병원방문을 미뤘다. 시간이 지나도 몸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보름 후 드디어 병원에 갔더니 당장 입원하라고 했고, 나는 그날 밤 수술을 받았다. 염증이 심해져 맹장이 터졌는데 그것도 모르고 보름을 버티고 다녔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죽을 수도 있었는데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아르스비테>창간호를 준비해서 막 세상에 내놓기 직전이었다. 처음으로 출판물을 만들랴, 해외출장을 다니랴 매우 긴장되고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얼굴에 뭔가 생긴 걸 발견했다. 그날로 나는 다시 입원하게 됐다. 수두였다. 이 나이에 수두에 걸렸다는 것도 황당했지만, 어렸을 때 한번 앓으면 두 번 다시 안 걸린다는 수두에 또 걸렸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다. 결국 나는 가족들의 문병도 못 받고 병실 문턱도 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주일 넘는 시간을 혼자 보냈다.

 

그 뒤로는 바이러스와 세균의 위력(?)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 생겼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디 작은 존재들이 나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워낙 주변에서도 인정하는 건강체질이었기 때문에, 나의 면역력은 이제 전같지 않고 심지어 몸에 문제가 있어도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병원에서는 남들은 흔히 겪지 않는 이례적인 상황을 드물게 연달아 겪으면서 과도한 두려움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느낀 게 있다. 아무리 마음을 닦고 내면의 힘을 기른다는 사람도 생존의 위협 앞에서는 정말 초라하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세포 속 깊이 박혀있는 뿌리 깊은 본능이다. 지인들에게 내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바이러스 하나면 다 무너진다고. 마음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내려놓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집착까지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내려놓음의 귀결점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것도 영구적이지 않고, 사람은 결국 그 어느 것도 가져가지 못 한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막상 죽음과 관련해서는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게 사람이다. 생존에 대한 집착은 그만큼 강하다.

 

그런데 물리적인 죽음만이 죽음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변해야 하는 그 어떤상황도 마치 죽음과 같은 공포스러운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사회나 조직이 지금까지의 습성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변하지 못하는 것도, 개인이 성격을 바꾸는 것이 힘든 것도, 지금까지 친숙했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을 일종의 죽음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엄청난 갈등이 폭발한다. 특히 권력, 명예, 돈같이 남들이 갖기 힘든 것을 성취한 사람이라면 그것들을 놓는 것이 죽는 것만큼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삶 속에서 크고 작은 많은 죽음들을 겪고 있다. “잠은 차용해 온 한 조각 죽음” 이라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말처럼 밤에 눈을 감고 잠드는 것도 작은 죽음이요, 들이쉬었던 숨을 내쉬는 것도 하나의 죽음이다. 죽음은 삶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고, 오늘을 산다는 것 자체가 어제의 죽음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밤잠을 설칠 정도로 나를 괴롭히는 마음의 걸림이 있다면 그 실체를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내가 나라고 집착해 온 하나의 허상을 깨고, 또 한번의 작은 죽음과 새로운 시작의 과정을 통과하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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