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 첫번째 질문, 명함 없는 나는 누구인가

올해 1월에 내가 발행하는 아르스비테라는 출판물 시리즈의 창간 소식이 언론에 소개되었다. 아르스비테는 ‘삶의 방식'이라는 라틴어로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주제로 다룬다. 언론기사에는 이 매체를 시작하게 된 여러 이유 중에 ‘명함이 없는 나는 누구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나의 인터뷰 내용이 실렸다. 그리고 기사가 나간 뒤 뜻밖에도 나는 많은 독자 e메일들을 받게 되었다. 

아르스비테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출판시장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새로운 문화를 공유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가격대가 높고, 두터운 종이로 만들어진 무거운 출판물이며, 심지어 절반은 영어로 되어 있다. 결코 대중적이지 않을 뿐더러 스마트폰으로 속도감 있게 필요한 정보만 검색하는 이 시대의 흐름에도 역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명함이 없는 나'를 생각한다는 그 취지에 공감해줬을까.

 

우리나라는 특히나 명함이 중요한 나라이다. 입신양명을 중시해온 유교적 문화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 특히 남자들에게는 나의 사회적 지위가 바로 나의 아이덴티티다. 나의 명함이 곧 나인 셈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의 명함을 갖고 있을 때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가도 커리어에 공백이라도 있게 되면 왠지 모르게 작아진다. 우리나라 같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 같이 수명은 늘고 은퇴는 빨라진 시대에는 우울증을 겪는 남성들이 많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수십년 동안 주말까지 사회생활에 바친 사람에게 은퇴 후 자기 자신과 홀로 마주해야 하는 시간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명함이 없어지면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했다는 사람일수록 그 허무함의 골은 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상시에 틈틈이 돌아봐야 한다. 모든 사회적 역할과 허상을 내려놓은 나는 누구인지. 

내가 이런 질문을 구체적으로 던지게 된 데는 계기가 있었다. 그야말로 남 부러울 게 없는 명함을 지녔던 때였다. 첫 직장이었던 언론사에서 부족한 나에게 여기자로는 국내 최초로 주말 메인뉴스 시간대의 단독앵커 자리를 맡겨줬다. 그 경력과 해외에서의 체험이 토대가 되어 당시 새로 출범한 정권의 대통령 외신대변인이라는 자리에 임명되었다. 30대 중반의 젊은 비서관으로서 권력의 중심에선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대통령비서실이라는 역동적인 조직의 움직임, 권력의 부침과 개인들의 흥망성쇠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값진 공부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 자리에 있으면서 앞으로 화려하게 펼쳐질 미래를 설계하는 대신, 나는 오히려 권력과 이른바 세속적인 성공의 무상함을 뼛속 깊이 느꼈다. 일과 성공, 그리고 미래의 진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는 우리나라 권력구조의 정점에 있고, 다양한 능력과 성공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엔 끝이 있고, 영화는 잠시 뿐이라는 것을 젊은 나이에 더욱 생생하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까지 초스피드로 앞만 보면 쌓아가던 커리어를 멈춰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모든 명함엔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야말로 ‘명함이 없는 나’는 누구인지를 알지 못 한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내 인생은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았다. 청와대 근무를 마친 뒤 나는 모든 일을 멈추고 내가 원하는 삶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1년 동안 집중적으로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몇 년 전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두 쌍의 남녀가 서로 다른 상대를 만나게 되어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고 결국은 각자의 길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제목처럼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고 현재를 냉정하게 점검하는 순간 때로 그 결과는 영화에서처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 그랬던 것처럼. 명함이 없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꼭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다. 지금 진정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다음 글에서 던지고자 하는 '삶의 방식 두 번째 질문'이다. 

[출처: 중앙일보] 삶의 방식 첫번째 질문 명함 없는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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